KBO선수소개 -투수편
한국프로야구가 1982년시작해 약40년되는 역사를 가지게되면서 수많은 선수들이 경기에 나서며 좋은선수들이 큰 족적을 남겼는데 각 구단에서 영구결번을 할 만큼 KBO리그 역사에 큰족적을 남긴 투수들인 최동원-선동열-김용수-송진우순으로 소개를 하려고합니다.
1.최동원(1958~2011)
소속팀:롯데자이언츠(1981)한국전력(1982)롯데자이언츠(1983~1988)삼성라이온즈(1989~1990)
별명:무쇠팔
수상경력:골든글러브(1984),MVP(1984),다승1위(1984),한국시리즈우승(1984)
통산 성적
선동열선수와 함께 한국프로야구라고 하면 가장먼저 떠올리는투수이다.이 최동원선수는 1980년대를 대표하는 투수였다.그는 고등학교 부터 남달랐다.고등학교 2학년시절 당시 최강팀 경북고를 상대로 노히트 노런 및 17이닝 노히트 노런을 달성하였으며 고등학생때부터 팔보험을 들어 화제가 되었었다.이에 그치지않고 더더욱 대단한건 프로입단하기전 실업야구에서81년 실업야구 코시 전부 등판하여 6경기 42이닝을 던지는 혹사를 당했었다.
그러한 혹사의 여파였을까 83년에는 9승16패라는 좋지않은 성적을 거두었으나 후일담에 프로계약건때문에 몸이 준비가 되지않았다고 밝혔다.역시 최동원은 최동원이었을까?84년 정규시즌 27승13패라는 말이 안되는 성적으로 증명하게된다.
당시 상대팀인 삼성에 비해 투수력이 딸린 강병철감독이 한국시리즈에서 1,3,5,7차전 선발을 맡긴다며 `동원아 우짜노 여까지왔는데` 무쇠팔최동원선수는`알겟심더,함 해 보입시더`라는 말을 남기고 마운드에서 묵묵히던졌다.그런 그가 열심히 투혼을 해준 결과 한국시리즈에는 최초이자 마지막이 어야하는 최초 4승함으로써 롯데자이언츠의 최초 한국시리즈 우승에 엄청난 기여를한다.그렇게 최동원은
선발 중간 마무리 할 것 없이 닥치는 대로 나와 이닝을 소화했다.그래서 한시즌 장명부 다음으로 많은 284.2이닝을 던졌으며,공격적인 투구스타일로 인해 피홈런율도 많았지만 삼진도 많이 기록하였다.그래서 개인 최다 탈삼진인 223K를 기록한다.(아직까지 깨지지않은 기록)
2.선동열(1963~)
소속팀:해태 타이거즈(1985~1995)주니치 드래곤즈(1996~1999)
별명:국보,무등산폭격기,나고야의태양
수상경력:한국시리즈 6회우승(1986~1989,1991,1993),MVP 3회(1986,1989,1990),다승왕 4회(1986,1989~1991),ERA1위 8회(1985~1991,1993),승률왕 4회(1987,1989~1991),구원왕 2회(1993,1995)골든글러브 6회(1986,1988~1991,1993)
통산성적
선동열이 고등학교 3학년이던 1980년에는 한국프로야구 출범 이전이었기 때문에 선동열은 1981학번으로 고려대학교에 입학한다.1981년 세계청소년야구대회 우승을하고 1984년 LA올림픽에서도 좋은 성적을 냈다.1985년 해태와 계약을 하는 줄알았으나 선동열은 한국화장품 야구단(실업야구)와 계약을 했으나 어머니의 회유로 해태로 입단하게되었다.하지만 이미 김용수와같은 이중계약으로 피해를 본 아마야구계가 집단 발반을 하게된다. 그래서 KBO와 KBA가 합의하여 대학졸업이후 실업야구에 진출한 선수들은 실업야구에서 2년넘게 활동해야 프로야구로 갈 수있는 규정을 만들었으며 선동열은 1985년 후반기 부터 등판하게되었다.
이렇듯 엄청난 대어였던 선동열은 해태타이거즈의 4회연속우승에 엄청난 기여를 했다.
1986년 평자0.99 262이닝 24승6패6세이브라는 말이안되는 기록으로 프로야구를 초토화시키고,1987년에는 평자0.89 162이닝 14승2패6세이브라는 기록을 하며,1988년도 평자1.21 16승5패10세이브로 나름 선동열치고는 평범한 시즌이었다.1989년에도 해태의 한국시리즈 우승을 이끌었다.1991년에는 연봉 1억원 계약을 맺었다.최초 프로야구 연봉 1억시대의 시초였다.
하지만 1992년어깨에 건초염으로 부상으로 많은 이닝을 날리지 못했으며 1993년부터 선동열은 마무리를 주로 뛰다가 1996년 주니치 드래곤즈로 이적했다.
3.김용수(1960~)
소속팀:한일은행 야구단(1983~1984)MBC청룡-LG트윈스(1985~2000)
별명:면도날,노송
수상경력:한국시리즈우승2회(1990,1994)다승왕(1998),승률왕(1998),구원왕3회(1986,1987,1989),한국시리즈MVP2회(1990,1994)
통산성적
KBO리그 최초 100승-200세이브를 거둔선수이며 KBO최초로 영구 결번식을 가진 선수이다.
1985년 2,300만원에 MBC에 입단했다.입단과 대학시절부터14번을 달기위해 주인인 이광권에게 번호를 달라 부탁을 했으나 거절 당하자.41번을 달게 되었다.이광권 은퇴이후에도 41번을 계속해서 달았다.프로 입단 2년차에 1점대 방어율에 세이브왕을87년&89년에도 세이브 1위를 기록하며팀의 든든한 마무리로 자리잡았다.그러나 1990년에 정상흠과 보직을 바꾸어 선발로 전환하게 되며 12승을 거둠과 동시에 그해 한국시리즈에서 2승을 혼자 따내 팀을 창단 첫해 우승을 이끌며 MVP를 차지했다.1991년에도 준수한 성적을 거두었으나 부상을 당해 은퇴를 고려했으나 재활을 통해 1993년 다시 마무리로 복귀하며 1994년 한국시리즈MVP를 수상하는 기염을 토하게되었다.또한 1996년부터 안정적으로 매년 12승 이상씩해주고 1998년에는 다승왕을 기록하며 최고령 다승왕을 기록하게되었다.
4.송진우
소속팀:세일통상(1988),빙그레-한화이글스(1989~2009)
별명:송골매,송회장님
수상경력:한국시리즈 우승(1999),골든글러브(2002),다승왕(1992),구원왕2회(1990,1992),승률왕(2000),플레이오프MVP(1999)
통산성적
노송 김용수와는 반대로 200승-100세이브를 한투수이며 최종적으로 210승-2000삼진-3000이닝을 기록하여 전무후무한 누적기록을 세운 선수이다.
송진우는 1989년 빙그레 이글스에 입단한다.단 첫 해부터 송진우는 자신의 기량을 증명한다. 첫 데뷔전을 완봉승(9이닝 4피안타)으로 장식하며 화려한 등장을 나타냈다.1990년에는 그의 영구결번인 21번으 달며 마무리 투수 역할에 주력하며 ERA1.82 11승7패27세이브를 기록하였다.1992년에는 선발-마무리 할것없이 마당쇠 역할을 하며 구원왕과 다승왕이란 타이틀홀더를 땄다.이렇듯 혹사를 당해 1997년 기점으로 하락세를 걸어 은퇴를 하나 싶었으나 애리조나 교율리그를 서클체인지업을 배워오며 기교파 스타일로 변화하여 제2의 투수의삶을 살게되었다.2000년 초대 선수협 회장을 역임하며 개막 한달이지나 합류했으나 5월18일 최고령 노히트노런을 세우고 13승2패4세이브라는 기록을 만들었다.점차 나이를 먹어가며 2008년 에이스인 류현진다음으로 많은 이닝을 소화하며 마지막 불꽃을 태우고 2009년 8월16일 은퇴를 선언하고 2009년9월23일 은퇴경기및은퇴식을 가졌다.
다음포스팅은 타자편으로찾아뵙겠습니다.